'인터넷 개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4.07 인터넷의 꿈은 이루어지는가 (1)
  2. 2009.04.20 인정받지 못한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 (76)
2010.04.07 08:21


초기 과학자들이 꿈꾸던 인터넷은 100년이 지난 2010년 완성되었다. 그들은 인터넷이 개발되면 사회적 갈등, 오해와 미움이 사라져 전쟁까지도 사라지는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인생을 바쳐 만들려했던 유토피아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영화처럼 그들이 살아 돌아 온다면 지금의 인터넷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100년 전 우리의 모습을 예측한 천재 과학자


 초기 과학기술은 인류를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전쟁과 같이 인류를 파괴하는 곳에 더 많이 사용되었다. 이에 앞장선 사람은 배니바르 부시 (Vannevar Bush)였다. MIT 부총장이자 전시과학연구개발국 (Wartime 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의 총책임자로 과학 기술을 전쟁에 응용하기 위해 핵개발 연구 등을 하였다.


 하지만 배니바르 부시는 자신의 과학 기술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힘들어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그는 IT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고문 중 하나인 ‘As we think’라는 글을 1945년 애틀랜틱 매거진에 실었다.


인터넷이 전쟁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개인이 인류의 지식을 자유롭게 검색해 사용 할 수 있다면 인류의 지식은 무한정 확장 될 수 있을 것이며 더 이상 전쟁 같은 바보 같은 짓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인들이 네트워크에 연결 해 마우스를 통해 자유롭게 정보를 검색 할 수 있는 대규모 시스템을 메먹스’ (memory extender)라고 이름 붙였다. 놀라운 것은 그가 말한메먹스라는 것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과 대부분 일치 한다는 것이다.


당시 세계 최초의 전자 계산시인에니악’ 이 개발 중이었으며 크기는 사무실 하나를 모두 채울 정도로 거대했기에 PC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시대였다. 네트워크 기술, 마우스, 키보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대를 앞선 개념이었기에 그는메먹스를 개발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이상은 후대 과학자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평생을 바쳐 인터넷 통해 유토피아를 만들려하다


부시의 생각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사람은 넬슨(Nelson)이었다. 하버드 대학교 1학년 때하이퍼텍스트라는 논문을 발표 후 평생을 인터넷 개발에 매진했다. 그는 인터넷이 개발되면 정치적 갈등, 잘못 된 정보, 오해와 미움, 불합리성이 모두 사라지는 유토피아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넬슨은 혼자서 너무나 완벽한 시스템을 설계하려고 하였다. 프로젝트를 계속적으로 확장시켜 결국은 끝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결과적으로 인류 역사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하이퍼텍스트는 지금도 HTTP라는(Hypertext Transfer Protocol) 인터넷 주소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평화와 유토피아를 꿈꾸던 배니바르 부시와 넬슨의 꿈은 모순되게도 수십 년이 지난 후 미 국방부의 지원으로 빈트세스팀 버너스리에 의해 개발된다. 배니바르 부시와 넬슨가 생각한 것처럼 개인들은 편하게 전세계의 정보를 검색 할 수 있으며 그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술까지도 우리는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전쟁이 사라졌으며 정치적 갈등, 잘못 된 정보, 오해와 미움, 불합리성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인터넷 때문에 이런 사회현상이 증폭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아직 진정한 인터넷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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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9.04.20 08:32
대한민국은 인터넷을 세계에서 두번째로 개발한 국가이다.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인 (전) 카이스트 전길남 교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노력을 발판으로 대한민국은 인터넷 강국이 되었지만 정부와 언론은 그를 대우 해 주지 않았다. 쓸쓸한 정년 퇴직 후 그를 영웅으로 인정하며 받아 준 곳은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이었다. 국가의 미래가 밝기 위해서는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많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에 큰 기여를 한 과학자를 대우해야 한다.


전길남 교수는 박정희 시대 해외 과학자 귀국 정책으로 돌아 온 1호 과학자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외국에 나가있는 과학자들에게 조국으로 돌아 와 일 해 줄 것을 주문한다. 이때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장 먼저 조국으로 돌아 오자 많은 과학자들이 그를 따라 귀국한다.

전길남 교수는 귀국 전 빈트서프와 함께 인터넷을 개발했다. 빈트서프는 미국에서 인터넷을 개발한 공로로 영웅으로 인정 받고 있으며 전 세계로부터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칭송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귀국 후 전길남 교수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인터넷을 개발하며 대한민국에 인터넷을 보급했다. 당시 후진국으로만 알았던 대한민국이 인터넷을 개발하자 가장 놀란 곳은 일본과 중국이었다. 일본과 중국 과학자들은 서둘러 전길남 교수를 찾아와 기술을 전수 받았고 그들 나라로 돌아가 인터넷을 보급한다.

전길남 교수는 과학자로 인터넷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인터넷 보급을 위해 박사 과정에 있던 자신의 제자들을 사업가로 키워냈다. 그의 제자들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좋은 조건으로 쉽게 취직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제자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힘들고 어렵지만 국가를 위해 기여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보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의 제자들이 만든 대표적인 회사는 '아이넷'이다. '아이넷'은 현재 사라졌지만 국내 최초의 인터넷 전문 회사였다. 현재 '인터넷 기업 협회' 회장으로 있는 허진호 박사가 창업한 회사였다. 지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1세대들의 상당수가 아이넷을 통해 인터넷을 처음 접했다.

전길남 교수는 대한민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인정 받지 못했다. 정부로부터 대우도 받지 못 했고 그 흔한 언론 취재도 거의 받지 못 해 알아 주는 이가 거의 없었다. 카이스트 교수 정년 퇴직 때 주목하는 이가 거의 없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정년 퇴직 후 갈 곳 없는 그를 불러 준 곳은 일본이었다. 전길남 교수는 현재 게이오 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자기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쳐 준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한다.

청소년들은 이공계 진학을 꺼리고 있고 우리의 꿈나무들은 더 이상 미래의 꿈이 과학자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정부와 언론은 순수 과학이 무너지고 있다고 호들갑이다. 하지만 어두운 연구실에서 새벽까지 연구 해 국가에 기여한 한 과학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생각 해 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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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인터넷 기업협회' 허진호 회장님이 '네오위즈'는 전길남 교수님 제자가 만든 회사가 아니라고 전달 해 왔습니다. 네오위즈 이야기는 삭제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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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