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09 08:23


 대한민국 초고속 인터넷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IT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90년 대 중반까지만 해도 모뎀과 Co-Lan 등을 통해 간신히 텍스트 전송하는 수준이었던 대한민국이 몇년만에 세계 최고의 초고속 인터넷 강국으로 거듭 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정리 해 보았다.


정부 부처의 예산 낭비로 시작 되어


9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KT,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에서 3중으로 네트워크 망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통신 사업은 KT만 하고 있었고 일반인들은 모뎀과 Co-Lan을 통해 저속의 인터넷 서비스만 이용 가능했다. 3사가 네트워크 망을 독립적으로 구성한 이유는 부처간의 협조가 안 된 상태에서 앞으로 네트워크 세상이 올 것이라는 가능성만을 믿고 경쟁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광케이블 1미터 설치 가격이 약 10만원 정도 할 정도로 네트워크 가격이 매우 비쌌다. 이런 네트워크를 3중으로 구축 했으니 천문학적인 자금이 중복 투자 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다. 이렇게 비싼 고속 네트워크를 전국으로 3중 구축해 놓은 곳은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천문학적인 투자에 비해 활용도 낮아

 

문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했지만 당장 사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법적 제약이 컸다.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전력 모두 당시 통신 업무를 담당하던 체신부 산하 기관이 아니어서 통신 업무를 할 수 없었다. 방송 업무 역시 할 수 없었다. 통신, 방송 업무를 할 수 없었기에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 모두 막대한 투자를 해 놓고 마땅히 사용 할 곳을 찾지 못했다. 당시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전광판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막힌 다는 안내 메세지 내보내는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교통 상황 변경에 따라 가끔씩 몇 글자만 전송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자체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청문회 피하기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민간 기업에 임대

 

천문학적인 투자에 비해 활용도가 너무 낮자 청문회 대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 한국전력과 도로공사는 네트워크 활용도를 높여 청문회를 피해가야 했기에 민간 기업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한국전력은 당시 컴퓨터 전문회사로 유명했던 삼보컴퓨터에 통신 사업을 제안했다.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를 제공했던 두루넷이었다. 한국 도로공사 역시도 CJ에게 망을 임대해 드림라인이라는 대형 회사를 만들었다.

 이들 업체는 국가로부터 저렴하게 임대 받은 네트워크망을 통해 약 월 4만원에 이용료만 받고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할 수 있었다. 현재 가격 기준으로 보면 비싼 금액이지만 당시만해도 세계에서 가장 싼 금액이었다. 당시 비싼 네트워크 가격을 고려해 볼 때 민간 기업 스스로 인터넷망을 구축했으면 절대 제공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때마침 김대중 정부는 IMF 탈출을 위한 성장 동력이 필요했고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는 슬로건 아래 국가차원에서 초고속 인터넷과 PC를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빠른 시간 내에 초고속 인터넷 강국으로 성장 할 수 있었다.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세계 최초의 기록 만들어

 

정부로부터 네트워크를 싸게 임대 받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기업들의 혁신과 도전정신도 큰 도움이 되었다. 두루넷이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 해 국내 최초로 미국 나스닥 상장이라는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성과를 만들어냈다. 또한, 하나로통신은 이미 모든 가정에 보급 되어 있는 전화선을 이용해 초고속 인터넷을 구현하는 기술인 ADSL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 해 국내 초고속 인터넷 발전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정부 기관들의 중복 투자, 기업들의 과감한 도전 정신, IMF 탈출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 등이 초고속 인터넷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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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10.02.02 08:35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공익 광고

네이버와 다음에서 선정 해 메인에 노출하는 글은 우리 사회에 뜨거운 관심을 받아 우리의 생각과 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최근 네이버와 다음이 선정하는 글은 우리 사회에 어둠을 밝히고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 선정적 흥미 위주의 글을 늘려나가 사회적 피해가 우려 된다.

 

네이버와 다음은 언론으로 인정 받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각종 규제와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이버와 다음의 성장은 뉴스를 기반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면서 성장했다. 사실 상 언론과 다름 없었다. 해외 포탈 사이트들이 검색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 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국내 포탈에서 뉴스를 처음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1998년이었다. 이때 포탈은 신문사에서 받은 뉴스를 최근 순으로 정렬 해 보여 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2000년 YTN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야후 코리아로 이직한 A씨는 획기적인 시도를 했다. 기존 신문처럼 사회적으로 알리고 싶은 것은 크고 좋은 영역에 배치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잘 보이지 않는 영역에 배치했다. 이를 눈 여겨 본 네이버는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A씨를 스카우트 했다. A씨는 월드컵 경기 내내 네티즌들이 좋아 할 만한 기사를 전방위적으로 노출했으며 인터넷의 특징인 댓글과 실시간 기사를 통해 종이 신문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기세를 몰아 같은 해 12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 기존 언론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함으로 네이버 시대가 시작 되었음을 알렸다. A씨는 네이버를 운영하고 있는 NHN에서 큰 인정을 받게 되며 2007년 CEO 자리에 오르게 된다. A씨는 NHN IBP 최휘영 대표이다. 네이버의 역사는 언론의 역사였다. 경쟁사인 다음 역시도 뉴스를 통해 사회적인 영향력을 키우면서 성장했다. 현 다음 커뮤니케이션 석종훈 의장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다. 부사장으로 2002년 부임한 후 첫번째로 한 일은 그 동안 존재했던 게시판 서비스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이후 2004년 12월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아고라’ 를 오픈하며 촛불집회 등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만들고 이끌었다. 

 

네이버와 다음은 의제 설정 기능을 하고 있다. 어떤 일을 크게 확대 하기도 하고 축소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 해 우리 사회에 담론을 만들 수도 있고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이런 과정들을 통해 여론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기에 네이버와 다음의 운영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이들 포탈은 사회적, 정치적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스로가 가진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연성화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메인 페이지를 포함한 주요 영역은 자극적인 연예 뉴스와 선정적인 글로 넘쳐나고 있다. 네이버의 뉴스캐스터는 선정적인 글로 사회 문제가 된지 오래다. 다음은 사회적 이슈가 많은 아고라의 글을 메인 페이지에서 빼 버렸다. 최근에는 시사 블로거들의 글은 메인 페이지에서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기술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대신 이 자리는 연예 이슈와 선정적인 글로 채웠다. 클릭을 유도 해 광고 매출을 늘릴 수 있고 정치적 부담, 사회적 논란 등 복잡한 문제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석이조였다. 


네이버와 다음의 운영진들은 온라인 편집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선정하는 글이 선정적일수록 우리 사회는 병들어 갈 수 밖에 없다. 작년 말 주요 포탈들이 발표한 인기 검색어만 봐도 연성화가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연예인과 루저녀 같은 자극적 단어였다. 현재 우리 사회는 연예 뉴스와 XX녀에만 몰두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갈수록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있으며 내일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적 어둠을 비추는 일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포탈의 모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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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9.11.17 08:44

우리가 새롭게 사용하는 말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 할 때가 있다. 인터넷과 웹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터넷은 원래 컴퓨터끼리의 연결을 뜻하는 단어였다. 현재와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각자 존재하던 네트워크들이 서로 연결 되기 시작하면서 단일한 거대 네트워크가 되면서부터이다.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1969년 레오너드 클라인룩 교수에 의해 구축되고 그의 제자인 빈트 서프가 1974 TCP/IP를 개발 해 기술이 표준화 되면서 그 동안 따로 존재했던 전 세계의 네트워크들이 빠르게 연결 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에는 인터넷이란 단어가 컴퓨터들끼리의 연결이란 뜻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와 동일한 뜻으로 혼재 되어 사용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거나 (Internet) 고유 명사를 뜻하는 the를 붙여 사용 (the internet)하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웹은 컴퓨터끼리 연결 후 이용 가능한 여러 기술 중 하나이다. 1969 ARPANET에 컴퓨터들이 연결 후 정보 교환을 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등장했는데 웹이 등장하기 전 23년간 고퍼, 텔렛, 아키, 이메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서버에 설치 해 정보를 교환했다.

 

웹은 팀 버너스리에 의해 제안 된 기술로 웹문서들끼리 링크를 걸 수 있는 기술이다. 팀 버너스리가 근무하던 CERN은 유럽인들의 공동 연구소로 주로 물리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각국에서 온 과학자들이 보유 한 방대한 연구 자료를 효과적으로 공유 할 방법을 찾다가 문서들끼리 링크를 걸면 좋겠다는 생각에 개발한 것이 웹이다. 1989년 제안 후 1991 Hypertext91에서 최초로 발표했고 1992년부터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당시 웹을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링크라는 것이 이미 47년 전에 Vannevar Bush에 의해 처음 제안 된 후 컴퓨터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웹은 문서 중간 중간에 링크가 걸려 있는 것이 전부였다. 키보드를 이용 해 웹서핑을 해야 했기에 매우 불편했을 뿐 아니라 글자만 표현 가능 해 시각적인 효과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웹은 링크를 인터넷에 접목 한 것에 불과하다고 저평가하였다.

 

하지만, 역사는 전혀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다. 미국에 NCSA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22살의 젊은 청년인 마크 앤드리슨이 모자익 (이후, 넷스케이프로 변경)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팀버너스리가 만든 웹은 그래픽도 없이 키보드를 이용 해 접속 해야 했지만 모자익을 PC에 설치 해 웹을 이용하자 지금처럼 글자와 그림을 마우스로 선택해 가면 이동하면 되었다.

 

이후 웹은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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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9.08.21 08:00
지난 주에 퇴근하면서 30 분 정도 인터뷰를 했습니다. 트위터를 어떻게 관전하고 있냐는 인터뷰였습니다.

조중혁, 김중혁
2가지 이름으로 나오는데 저는 '조중혁'입니다. 흑!

[사회]유명인사들 끄는 트위터의 은밀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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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9.07.16 11:04

2006년 필자가 처음 접한 트위터의 모습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트위터 상단에 써 있는 ‘What are you doing?’ 이라는 질문에 다들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짧은 글을 올렸다. ‘지금 집에서 밥 먹는 중’, ‘회사에서 일 하는 중’.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외국인들이 영어로 올리는 이런 내용들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전혀 이해 할 수 없었다.

 

트위터는 Jack Dorsey가 지금 이 순간 친구들이 뭐를 하는지 알고 싶어서 만든 사이트였다. 초기 트위터 시절 국내 사용자가 거의 없어 following 대상자를 찾기 힘든 필자에게는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했다. 솔직히 상당히 소모적인 내용으로만 가득한 사이트로만 생각했다. 가끔 접속 해서 테스트를 하는 수준이었다.

 

트위터를 주목하게 된 때는 2007년 개최된 IT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음악 축제부터였다. SWSX에서 대형 전광판을 설치 한 후 트위터를 통해 행사 진행을 생중계했는데, 이때 작성된 관련 글들이 2만개나 되었다. 이는 세계 최대 IT 전문 블로그인 테크 크런치 (www.techcrunch.com)를 통해 크게 보도 되었다. 이후 트위터는 해외 블로거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제거리가 되었고, 세계 최대 블로그 검색 사이트인 Technorati에 'SWSX'와 '트위터'란 단어가 2007년 하반기 내내 인기 검색어로 선정 되었다.
 
언론이 트위터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James buck’ 사건 때문이었다. 2008 년 4월 10 일, James buck (UC 버클리 저널리즘 졸업생)과 그의 통역관이 이집트에서 반정부 사진 때문에 체포 된 사건이다. 체포 된 후 그는 모바일을 이용 해 트위터에 상황을 전송했다. 그의 친구들은 UC 버클리와 카이로에 있는 미국 대사관과 언론사에 연락 했다. 대학으로부터 고용 된 변호사에 의해 그는 다음 날 구치소로부터 풀려났다.

 

이 사건 이후 트위터는 실시간성과 단순함을 특징으로 하는 마이크로 미디어 사이트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NASA는 화성에서 얼음을 발견한 역사적인 순간을 트위터를 통해 알렸으며 ‘시스코’, ‘선 마이크로시스템’ 등은 제품과 서비스 정보를 제공했다

 

결정적으로 트위터를 성장 시킨 사건은 작년에 오바마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이 해킹 되는 사건이었다.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수 많은 미국인들이 트위터에 가입 해 오바마를 Following 하기 시작했다.

 

국내 사용자들이 트위터를 통해 교류를 시작 한 것은 작년 중순부터이다. 세계 최대의 SNS 사이트인 페이스북 (www.facebook.com)의 국내 사용자들이 트위터로 옮겨 오면서부터이다. 주로 인터넷 업계 종사자들로 벤치마킹 차원에서 페이스북을 사용하다가 실시간 대화가 가능 한 트위터로 옮긴 것이다.
 
작년 하반기에는 드림위즈 '이찬진' 사장과 인터넷 기업 협회 '허진호' 회장이 가입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업계 사람들의 가입이 줄이었다. 특히 '허진호' 회장은 국내 최초로 트위터 오프라인 모임을 직접 주최하며 붐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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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9.05.08 08:40

< 목차 >
1. 구글 VS 네이버 인수 합병 전략 비교
2. 야후 VS 다음 인수 합병 전략 비교
3. 한국 VS 미국 인수 합병 전략 비교

야후는 인수합병으로 가장 크게 성공하고 가장 크게 실패해 본 회사이다. 초기 야후는 창업자인 제리양이 대학원 시절 취미로 모은 '즐겨찾기' 목록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회사였다. 하지만 인수 합병을 통해 세계 1위 인터넷 기업으로 우뚝 성장했다. 97년 Four11에서 운영하던 로켓메일을 인수 해 발 빠르게 메일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메일은 야후 메일이고 현재까지 야후의 경쟁력을 유지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야후는 인수 합병의 실패로 구글에게 발목이 잡힌다. 야후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1999년에 57억 달러(약 5조 6천억원) 라는 천문학 적인 금액을 주고 Broadcast.com를 인수했다. 이는 비슷한 서비스로 초대형 인수 합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구글-유투브를 인수 한 사건과 비교 할 수 있다.
이 때 사용한 금액이 16억5000만 달러로 야후가 Broadcast.com를 인수 한 금액의 1/3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10년 전 야후가 Broadcast.com을 얼마나 많은 돈을 주고 인수 한 것인지 비교된다.

야후는 앞으로 다가올 온라인 미디어 시장을 준비 했고, 대표적인 미디어라고 할 수 있는 TV를 따라 잡기 위해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인수 한 것이었다. 하지만 야후의 도전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지금 Broadcast.com은 야후 사이트 내에서도 야후 론치캐스트에는 흔적을 찾기 힘들다. Broadcast.com 이후 야후는 자금난에 시달렸으며 보수적인 회사로 변하게 된다.

Broadcast.com이 남긴 가장 큰 휴유증으로 야후는 2000년도 전후로 해서 갑자기 커진 검색 서비스 시장에 기민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이 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은 업체는 구글이었다. 구글은 야후에 검색 기술을 제공하고 있었으나 검색 시장이 커지자 독립했다. 야후는 구글을 인수하려고 했으나 Broadcast.com 인수 실패 휴유증으로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했다. 2002년이 되어서야 다른 검색 업체인 '잉크토미'를 인수 했고 2004년에 전열을 정비 했으나 이미 구글이 검색 시장을 장악 하고 있었다.

야후는 구글에 밀려 2위 사업자로 추락한 것에 대한 상처를 인수 합병으로 역전 하려고 했다. 다시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진행한다. 기존에 인수했던 업체들이 킬러 서비스로 성장 가능한 기능성 서비스였다면 이후 진행 된 업체들의 상당수는 Web2.0 업체들이었다. 신문에 Web2.0 업체로 소개만 되면 야후에서 인수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이때 건진 보석같은 업체는 '오버츄어'였다.  오버츄어는 검색 광고의 특허를 가지고 있는 업체로 국내에서도 네이버를 포함 해 대부분의 포탈들이 오버츄어와 제휴를 통해 검색 광고를 제공하고 있다. 야후는 검색의 중요성을 늦게 깨달아 검색 시장에서 2위에 만족해야 했지만 검색 광고 특허를 가진 회사를 인수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구글은 오버츄어와 비슷한 '애드워즈' 검색 광고를 제공하고 있고 특허 사용을 조건으로 야후에게 구글의 주식 270만주를 제공했다.


다음은 야후와 마찬가지로 한국 인터넷 시장에서는 남부러울 거 없은 1위 회사였다. 다음은 야후처럼 '미디어'를 추구 했고 메일 서비스를 통해 강력한 경쟁력을 지켜 나가고 있는 점도 닮았다. 심지어 '검색'의 중요성을 몰랐다는 점까지 닮았다. 야후가 자체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구글 검색 기술을 사용한 것처럼 다음도 네이버 기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다음과 야후는 인수 합병 전략이 달랐다. 야후가 53번의 인수 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웠지만 모두 인터넷 서비스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회사였다. 하지만, 다음은 온라인 서비스와 상관 없는 업체들을 인수하거나 투자를 했다.야후는 인터넷 시장이 계속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다음은 국내 온라인 시장은 포화 상태이고 더 이상 커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가격 경쟁력과 온라인 마케팅 능력을 통해 오프라인 시장으로 진출했다. 2000년 오이뮤직 인수 (5.2억원), 2001년 JYP엔터테인먼트 지분 50% 매입 (35억원), 2002년 1월 미디어 2.0 인수, 2006년 교보문고 지분 15% 매입 (약 53억원) 등 인터넷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적은 업체들을 인수했다. 하지만 온라인 서비스 외에 경험이 없는 다음이 좋은 실적을 내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국내 인터넷 시장을 비관적으로 보았기에 해외 업체 인수는 공격적으로 진행했다. 2004년 1112억원을 들인 라이코스 인수를 들 수 있다. 라이코스는 초기 인터넷 시장에서 야후의 강력한 경쟁자였다. 야후보다 6개월 늦게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검색 엔진 기술을 대중적으로 선보인 최초의 사이트로 즐겨찾기를 모아 놓은 야후보다 진일보한 서비스였다. 하지만, 6개월의 차이는 생각보다 커서 '야후 = 인터넷 검색' 이라는 등식은 갈수록 고착화 되었다. 다음은 스페인 업체인 '테라' 등에 팔려 다니며 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는 라이코스를 인수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의 중심으로 바로 들어 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라이코스를 통한 세계화는 쉽지 않았다. 무리한 라이코스 인수로 20004년 당기 순이익은 - 180억원을 기록했고 이후에도 몇년간 매년 수백억의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다음은 네이버가 검색으로 앞서 갈때 라이코스 인수 사건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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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인수 합병의 역사

야후 인수 합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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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8.04.03 08:42
Techcrunch에서 퍼 왔습니다.

리눅스의 역사를 동영상으로 정리 해 놓았네요. 리눅스는 헬싱키 대학생이던 리눅스 토발즈가 미닉스를 좀 더 편하고 무료로 사용 할 수 있는 목적으로 개발했는데요. 동영상을 보시다 보면 IT 역사에 길이 남을 포스팅에 대해서도 나옵니다. 리눅스 토발즈가 리눅스를 개발했다고 유즈넷 게시판 포스팅 하는 장면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포스팅의 원본을 다시 보고 싶네요. 유즈넷 검색 사이트인 데자뉴스에서 미러링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이 게시물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구글이 인수한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개인적으로는 90 년대 중반 이만용님이 국내 최초로 슬랙웨어를 배포 할때 깔아서 사용한 얼마 안 되는 유저 중 하나였는데, 기획자로 빠지기 시작하면서 사용 안 하고 있어 지금은 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다만, 초장기 사이비 종교를 연상 시키는 나우누리 리눅스 동호회의 마니아성인 분위기와 리눅스 정신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리눅스는 기술이 아니라 정보 공유를 바탕으로 둔 철학이었는데 지금은 저렴한 (?) OS 중 하나로 전락 해 버린 거 같아서 많이 아쉽습니다.

추신: 혹시 리눅스란 이름은 리눅스 토발즈가 리눅스 개발 시 소스를 모아 놓은 디렉토리명이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당연히 본인의 이름에서 따 온것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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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8.02.04 08:39
요즘 인수위에서 부처 통폐합을 하려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씁니다.

사실, 우리 나라가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공무원들이 미래를 내다 보는 예지력이 있었던 덕분입니다.

(혹자들은 우리나라를 인터넷 강국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공부 못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자기가 공부 못 하는지를 모르고 까부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꺼내는 것으로 하고... )

제가 96 년도인가 인터넷에 목숨 걸던 시절, 저와 비슷한 곳에 목숨 걸던 형들이 이제 막 만들었던 회사에 어항 청소하며 바닥 쓸러 입사 했는데, 홈페이지 만들어 주고, TT 선 서비스 하던 회사였습니다. 정확하게는 인터넷에 관련 된 모든 일을 다 하였습니다. 그래도 할 것이 별로 없던 시절이였습니다.

당시에 집에서 24 시간 인터넷을 할 수 있었던 방법은 CO-lan 이란 방법 밖에 없었는데, TT 선 인터넷 기술이란 일제 시대 영화보면 자주 나오는 핫라인을 이용 해 집에 전용선을 구축하던 당시에는 상당히 앞선 기술이였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A 와 B 장소를 1:1로 연결 시켜 놓아 전화만 들어도 상대편과 자동으로 연결 되는 기술을 이용 한 것으로 전화선을 이용해 TT선 서비스 회사와 가정집을 연결 시켜 놓는 것이였습니다. 당시에는 33.6K 모뎀을 24 시간 연결 시키는데 파격적으로 저렴한(?) 가격인 8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33.6K가 초고속(?) 인터넷 속도였죠.

근데, 세계 최초로 진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하겠다던 두루넷이란 회사가 나오더군요. 그것도 저희 회사보다 더 저렴하게 하겠다고 하더군요. 참 황당했습니다. 대충 제 기억으로는 초기 두루넷 금액이 한달에 5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광케이블 1미터 설치하는 가격이 대충 12만원 정도 하였습니다. 이거 아무리 머리 회전을 해도 타산 안 맞더군요. 그래서, 두루넷에서 스카웃 제안도 받았는데, 두루넷 곧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했습니다. ( 이때 제가 흐름 잘 탔으면 지금처럼 바닥 생활은 안 할터인데 ^^)

그때는 저도 국내 네트워트 환경을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나라는 백본이 3중으로 구축 되어 있더군요. KT 에서 한번 깔고, 한국전력에서 한번 깔고, 한국 도로공사에서 또 한번 깔았습니다.

저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게 비싼 백본을  다른 국가 기관에서 설치했으면, 협조 받아 같이 사용 하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던 공무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죠.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지만 미래에는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여 중복 투자를 결심 한 것입니다.

문제는 깔아 놓고 보니 사용 할 곳이 없는 거 같더군요. 심지어 도로공사는 고속도로 전광판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막힌 다는 안내 메세지 내보내는 것이 거의 전부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 시간에 몇글자 전송하면 되는 것을 하기 위해 국가 인프라를 건설 한 것이였죠 (혹시, 관계자 분들 당시에 더 많은 곳에 활용했다면 댓글로 제보 부탁 드립니다. )

당시 상황! 바로 국정감사감이죠.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던, CJ 등 민간 기업들이 한국전력과 도로공사에 찾아 가서 초고속 인터넷 사업 할터이니 망 좀 빌려 달라고 하자, 국가 인프라가 놀고 있어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난감 한 상황에 빠져 있던 관계자들이 헐값으로 빌려 준 것이죠.

그래서, 우리나라 초고속 인터넷 가격은 다른 나라에서는 기업에서 제공하기 불가능한 가격으로 저렴한 가격에 제공 되었고,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 강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고, 덕분에 저희 회사는 망했고 저는 어두운 인생 터널로 들어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 서면서 부서 통폐합을 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합리적으로 일하게 될 공무원들을 생각하면 대한민국 앞날은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닌가 가슴이 아픕니다.

당시 중복 투자 했던 공무원들 찾아서 상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부처 통폐합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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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7.12.12 08:03

미디어 중에 최고의 미디어는 단연 TV입니다. 그렇기에 인터넷을 통해 TV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은 1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게 됩니다.

막 형성되기 시작한 테헤란 밸리에서 너도 나도 꿈꾸며 시작한 아이템 중 대표적인 아이템이 인터넷 방송이었습니다.

'내가 꿈꾸는 방송'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음악 전문 방송을 꿈꾸었던 나인포유를 대표로, VTV,한국청소년인터넷방송,C3TV,SMR,IBC,RGnet,사이버뮤직,M2B,CHATV,FGB,뮤직코리아,얼토당토 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나인포유 방송은 유명 연예인을 섭외해 기존 공중파 방송과 경쟁까지도 했습니다. 양진석, 전유나, 류시현 등을 영입 해 DJ로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문기자들에게 좋은 먹이거리가 되어 신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해 당장이라도 KBS같은 기존 공중파 방송국이 문을 닫을 거 같은 느낌을 주기까지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동네 교회처럼 늘어 나던 인터넷 방송국은 콘텐츠의 빈약성과 조약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얼마 못가 거의 대부분 사라져 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었죠. 아! 아직 느린 인터넷과 컴퓨터를 가지고 TV를 따라잡는 것은 무리구나..

그 후, 인터넷 벤처가 아닌 제조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별텔레콤, 디티비로 같은 중견 업체들이 셋톱박스를 이용해 TV에 대한 도전을 하였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TV에 도전하는 모델이 아니라, TV를 이용하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래서, TV와 인터넷에 대한 결합을 시도 하려고 하였습니다. TV를 통해 인터넷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당시에 많이 연구하고 고민했던 것이 키보드를 리모콘화 시키는 방법을 많이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인터페이스에 대중은 관심이 없었죠. 아무리 키보드를 리모콘화 시켜도 키보드 일 뿐이고 거실에 누워서 편하게 즐기고 싶은 TV를 키보드를 이용 해 웹서핑하라는 것에 호응 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도 대부분 망했습니다.

그후, 인터넷 방송은 순수아마추어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관련 기업들이 모두 망해 버려 황폐해 진 시장을 사용자들이 Winamp를 이용해 방송하게 됩니다. 한때, 큰 붐이 불었지만 꽃이 피기도 전에 저작권 강화라는 폭탄을 맞고 급격하게 사라져 갔습니다.

IT 에서 10년이란 시간은 강산을 바꾸는 시간이 아니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시간인거 같습니다.
10년 전 콘텐츠의 빈약성은 UCC (User Copied or created Contents)로 극복을 하고, 조약함은 리치미디어의 발달로 극복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가능했기에 판도라TV같은 서비스가 등장 할 수 있었겠죠.

또한, 셋탑박스 업체들이 도전했던 인터넷TV는 하나TV와 같은 모델로 재탄생하여 성공적인 스타트를 하였습니다. 한별텔레콤 같은 업체가 TV와 인터넷에 결합을 시도했을 당시에는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전달하는 것이 인터넷 속도 문제로 불가능했죠. 오직 글자와 이미지를 전송 할 수 있었는데 이는 TV의 영역이 아니죠. 하지만, 당시에 1M라는 초고속 인터넷 속도가 지금은100M가 되어 원래 TV의 목적인 동영상을 어려움 없이 전송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하나TV 같은 인터넷TV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Winamp 방송이 추구했던 사용자 라이브 방송은 부활하지 못한거 같습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2가지 사례보다 훨씬 어려울 것으로 판단 됩니다. Winamp 방송이 사라진 이유는 기술적인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죠.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놓지만, 저작권은 시간이 흐를 수록 강력해지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용자 라이브 방송은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요?

사용자 라이브 방송이 부활되기 위해서는, 기존 방송을 흉내내는 모델이 아닌 인터넷 방송만의 방송 모델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는 모든 뉴미디어가 꼭 해결해야 하는 숙제입니다. 처음에 TV도 원래는 당시에 최고 미디어였던 연극과 오페라를 집에서 볼 수 있게 개발한 뉴미디어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안 보았죠. 지금도 연극과 오페라를 집에서 보면 감흥이 떨어지는데 당시에는 오죽했겠습니까.

하지만, TV는 이 숙제를 스타 탄생이라는 방법으로 극복했습니다. 천재 PD가 나타나 장학 퀴즈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젊고 잘 생긴 하바드 대학생이 연속 우승을 이어가자, 경제 불황에 힘들어하던 미국에 새로운 희망으로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참신한 인물로 스타 탄생을 한 것이죠. 이는 바로 TV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아직 아무도 찾지 못했지만 인터넷 방송만의 콘텐츠 그것을 찾아 내는 사람이 성공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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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