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24 21:19

제가 Cnet 에 쓴 칼럼입니다.




정부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늘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소프트웨어 혁신전략’ 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자 지원 정책도 발표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창조 경제’의 한 축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혁신전략’은 부족한 개발자를 늘리기 위해 정부 예산을 사용 해 개발자가 되는 길을 지원해 줄 터이니 하루 빨리 개발자의 길에 들어 서라고 국민을 향해 종용하는 듯한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소프트웨어 혁신전략’을 살펴 보면 고졸인력들이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SW마이스터고등학교’ 설립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의 대중화를 위해서 누구나 쉽고 편하게 SW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과 TV에서 SW교육 프로그램을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교육부와 협의 해 수능 선택 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까지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개발자가 부족한 이유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배울 곳이 부족하거나 배움의 비용이 너무 커서였는지 묻고 싶다. 어린 학생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길에 들어 서길 기피하고, 이미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개발자의 길을 포기하는 지금의 상황을 배울 기회의 부족 탓으로 돌리는 건 무리가 있다. 프로그램머에게 멘토는 팀장님이 아니라, 집 앞에 있는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통용 되는 현실에서 위와 같은 개발자 늘리기 전략이 얼마나 국가적으로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노벨 IT상, 튜링 상을 주목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개발자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가장 확실하며 산업 전체의 활력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방법은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업계의 ‘스타’가 탄생하는 것이다. 멀리는 박세리와 박찬호라는 스타가 등장 한 이후 골프 선수와 야구 선수를 꿈꾸는 인재가 늘어나고, 가까이는 싸이를 통해 연예 산업이 크게 성장했던 경험을 소프트웨어 산업계에도 적용 할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업계도 세계적인 스타가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인력 중 세계적인 스타가 탄생 할 경우 관련 종사자들의 자긍심 높일 수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공인 받는 방법 중 하나는 IT 업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튜링상’을 수상하는 것이다.

튜링상은 1947년 설립 된 컴퓨터 분야 학회들의 연합체인 ACM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에서 주는 상이다. 컴퓨터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을 매년 선정한다. 튜링상은 ‘앨런 튜링’ ((Alan Mathison Turing)을 기리기 위한 상이기도 하다.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기본 원리를 만들었으며, 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측에 적국의 암호를 해독 후 전달 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한 전쟁 영웅이기도 하다.


튜링상 수상자의 대우

튜링상을 수상하게 되면 최고 대우와 함께 업계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다. 같이 일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자신의 직업의 자부심을 느끼고, 배우는 학생은 미래의 꿈을 설계하게 된다.

튜링상 수상자로 선정 되면 예외 없이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앞 다투어 모시고 간다. 특히, 스탠포드와 UC버클리가 튜링상 수상자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은 도널드 크누스 (Donald Knuth), 알렌 뉴웰(Allen Newell) 등 18명이 소속되어 있으며, UC버클리도 리차드 카프와 짐 그레이 등 18명이 소속 되어 있다.

이 외에도 하버드 대학 13명, MIT 12명 등이 소속되어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주요 대학에서 튜링상 수상자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번 년도 튜링상 수상자에 대한 후보자를 현재 ACM 공식 홈페이지에서 접수 받고 있는데, 이번 튜링상 수상자는 유독 스탠포드와 UC버클리의 영입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 된다. 튜링상 수상자가 가장 많이 소속되어 있는 대학이라는 영예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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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9.10.25 11:34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호랭이님께서 윈도우 7 개발자 세미나를 주최하시네요. 홍보를 부탁 한다고 해서 포스팅 해 보네요.

제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보통 웹기획자인것으로 알고 있어서 이 글을 읽는 개발자가 많지는 않을 거 같은데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는 개발자 계시면 지금 당장 신청 부탁 드립니다. ^^;


신청 하시는 곳: http://new.imaso.co.kr/seminars/wi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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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9.06.22 08:28

에반 윌리암스

에반 윌리암스

- 마크 주커버그, 마크 앤드리슨 들 수 있어
- 최근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은 에반 윌리암스 들 수 있어

 

우선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를 들 수 있다. 페이스북은 최근 2년간 최고의 트랜드 리더 사이트였다. F8 정책을 통해 사이트를 개방 해 누구나 페이스북 프로그램을 개발 할 수 있게 했고 SNS를 OS를 승격시켰고 이는 거대한 트랜드를 만들어 냈다. 'The Crunchies 2008' 등에서 페이스북을 종합 부분 대상에 선정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또 다른 인물로는 마크 앤드리슨을 들 수 있다. 90년대 중반 넷스케이프를 개발 해 SUN, IBM 등을 이끌며 인터넷을 시대의 중심으로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한 인물이다. 그는 'Web 2.0' 이라는 거대 트랜드를 만드는데도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Web2.0 대표 사이트인 Digg.com, Twitter.com, Netvibes.com, Ning.com 등에 투자해 세계적 사이트로 성공 시켜 Web 2.0을 이론이 아닌 현실로 만들었다.

 

최근 인터넷 트랜드 리더로 급부상한 인물로는 에반 윌리암스 (Evan Williams)가 있다. 국내에서는 익숙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블로그’와 ‘트위터’를 개발 한 인물이라고 소개 하면 그가 왜 최고의 트랜드 리더로 급부상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반 윌리암스는 1999년 블로거닷컴 (blogger.com) 이라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블로거닷컴은 2003년 구글에 의해 인수 된다. 특히 구글이 인수한 첫번 째 서비스 회사라는 점에서 더욱 더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구글은 이전에 2건의 인수 합병이 있었지만 모두 검색 회사였다. 구글 인수로 블로그 붐이 일어나며 ‘블로그’라는 단어가 대중화 되기 시작했다. 블로그라는 단어는 ‘피터 메홀츠’가 처음으로 사용했으나 블로그 시스템을 만들어 대중화 시킨 사람은 에반 윌리암스이기에 그를  ‘블로그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에반 윌리암스의 또 다른 작품인 트위터는 페이스북 이후 가장 급성장 하고 있는 최고의 트랜드 사이트이다. 초기 아이디어는 잭 도시가 (Jack Dorsey) 친구들이 전화 할 때 언제나 “지금 어디야?”라고 물어 보는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 하지만 에반 윌리암스에 의해 사업화 한 후 세계적인 서비스로 성장했기에 잭 도시의 작품이라는 의견보다는 에반 윌리암스의 작품이라는 의견이 더 많다. 블로거닷컴을 통해 성공 해 본 경험을 가진 에반 윌리암스가 있었기에 트위터가 성공 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다.

 

그 외 소프트웨어 최대 기업으로 인터넷 회사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검색 왕국인 구글의 최고 경영자인 에릭 슈미트를 들 수 있으나 최근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어 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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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8.11.26 08:41

전 HP의 CEO였던 칼리 피올리나는 미국 여성 기업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수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HP 오너 가문과의 갈등으로 CEO 자리에서 물러 난 후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사라지던 그녀가 얼마 전까지 매케인 진영의 참모로 일했던 것이 알려지면서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보낸 인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 업계는 과거 20년간 혁신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세상을 바꾸어 놓았기에 언론에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인물들이 유독 많았다. 하지만 닷컴 버블이 사라지며 이들도 자연스럽게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혁신적인 업적으로 세상을 바꾼 인터넷 영웅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정리 해 보았다.  

인터넷 영웅을 뽑을 때 빼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은 넷스케이프 관련자들이다.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개발한 넷스케이프 코퍼레이션은 90 년대 인터넷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수 많은 혁신을 만든 회사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마크 앤드리슨이 대표적이다. 20 대 젊은 나이에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개발 해 인터넷 대중화를 앞당긴 인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넷스케이프를 앞세워 SUN과 IBM 등 세계 최고의 IT 기업들을 이끌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경쟁을 했다. 네티즌 사이에서 평판이 안 좋았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하는 젊은 다윗으로 비유되어 인터넷 업계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패해 그는 넷스케이프를 AOL로 매각하며 AOL의 CTO (최고 기술 책임자)가 되었다. 하지만, AOL에서 큰 대우를 받지 못해 AOL을 떠난 뒤 서서히 언론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 Facebook의 이사회 (Board of directors)에 선임 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Facebook은 작년 한 해 급성장 해 정식 서비스 2년만에 세계 1위 커뮤니티 사이트로 성공한 사이트이다. 그는 페이스북 이사회 선임 전 또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인 Ning.com 의 창업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또한, Web2.0 서비스의 대표 주자격인 Digg.com, Twitter.com, Netvibes.com 등의 주요 투자자이기도 했다.

넷스케이프가 배출한 또 다른 인터넷 영웅은 제임스 클락이다. 마크 앤드리슨과 함께 넷스케이프라는 브라우저를 이용해 넷스케이프 코퍼레이션을 공동 창업했다. 그는 투자자이자 경영자였다. 제임스 클락은 넷스케이프 코퍼레이션 창업 전에도 실리콘그래픽스라는 회사를 창업 해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던 인물이었다. 실리콘그래픽스는 3D 관련 작업에 특화 된 고급 컴퓨터를 주로 개발했다. 이런 이유로 실리콘그래픽스 컴퓨터는 헐리우드에서 매우 큰 사람을 받았으며 '쥬라기 공원'등 컴퓨터 그래픽의 혁신을 이룬 많은 영화에서 사용 되었다. 실리콘그래픽스는 나스닥에도 상장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제임스 클락이 넷스케이프 코퍼레이션에 투자해 CEO가 되었다는 것은 인터넷 시대가 열린다는 신호탄이었기에 언론의 매우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넷스케이프 코퍼레이션까지도 나스닥에 상장시키며 제2의 성공 신화를 쓰기도 하였다. 하지만, 제임스 클락도 넷스케이프를 AOL에 매각 후 언론의 관심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는 넷스케이프 이후 건강 벤처인 myCFO라는 회사를 세우기도 했고, Neoteris라는 회사를 세워 Netscreen이라는 네트워크 보안회사에 매각하기도 하는 등 끊임 없이 창업과 도전을 계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현업에서 물러 나고 기부 활동을 하며 여유로운 삶을 보내고 있다. 최근 20대의 세계적인 호주 모델인 크리스티 하인즈와 약혼 해 언론에 또 한번 관심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넷스케이프가 배출한 또 다른 영웅은 브렌단 아이히이다. 자바스크립트라는 인터넷 언어를 개발 해 현재도 HTML과 함께 홈페이지 제작 시 가장 많이 사용 된다. 브렌단 아이히는 자바스크립트 개발을 인정 받아 당시에 유력 일간지에서 인터넷 히어로즈에 뽑힌 적도 있다. 그는 넷스케이프에서 배출한 인력 중 아직도 유일하게 관련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넷스케이프의 후신이자 인터넷 익스플로어의 대항마인 파이어폭스를 만드는 모질라 코퍼레이션의 CTO (최고 기술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넷스케이프 관련자 외 최고의 인터넷 영웅은 빈트세프와 팀 버너스리이다. 빈트세프는 인터넷의 전신인 알파넷을 개발 해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우고, 팀 버너스리는 인터넷을 대중화 시킨 기술인 월드 와이드 웹 (WWW)을 개발 해 웹의 아버지라 불리운다. 연구원이자 학자 출신은 그들은 얼마 전까지 모두 인터넷 관련 단체 의장으로 일했었다. 빈트세프는 인터넷 주소를 관리하고 연구하는 민간 단체인 ICANN에 의장으로 근무했었다. 하지만, 작년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인 구글에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팀 버너스리는 아직도 민간 단체의 의장으로 있다. 인터넷 관련 표준을 연구하고 주도하는 W3C에 의장으로 있으며, MIT 컴퓨터 과학/인공지능 연구실에서 3Com 학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등 비상업적인 연구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프로그래밍 쪽에서 혁신적인 업적을 낸 사람은 자바를 개발 한 제임스 고슬링이다. 자바는 플랫폼 독립적인 언어로 JVM만 설치하면 어느 플랫폼에서도 실행 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인터넷 초장기부터 매우 큰 관심을 받으며 인터넷 대표 언어로 성장 했다. 제임스 고슬링은 자바 개발 전에도 유닉스에서 많이 사용하는 편집기인 emacs를 개발 해 이미 천재 개발자로 인정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세계 최고의 개발자로 인정 받게 한 것은 자바를 개발하면서 부터이다. Sun에서 자바를 개발한 그는 여러 번 이직 소문이 있었지만 아직도 SUN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 고슬링과 함께 자바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람은 킴 폴레세이다. 자바 초장기에 자바 관련 일을 한 유일한 여자이며 그녀의 업무가 마케팅이였기에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녀는 Sun을 떠나 자바 기반 푸시 업체인 마림바 (Marimba)를 창업했다. 특별한 성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90 년대 후반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여성 기업인으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HP의 칼리 피올리나가 IT 대기업을 대표하는 여성 기업인이라면 킴 폴레세는 벤처 기업을 대표하는 여성 기업인으로 관심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30대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90년대 후반 타임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25인'에도 선정 된적이 있었다. 그녀는 마림바를 BMC에 매각 후 세계 최대의 블로그 검색 사이트인 Technorati에 이사로 일했고, 현재는 기업용 솔루션 회사인 Spikesource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홈페이지를 만들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인 플래시는 매크로미디어에서 근무하던 조나단 가이가 개발했다. 그는 플래시 성공 이후 매크로미디어를 떠나 펜 컴퓨팅 그래픽 회사인 퓨처웨어웨이브 소프트웨어 (Futureware software)를 설립했었다. 이후 사업이 부진하자 에너지 관리 솔루션 회사인 소프트웨어 애즈 아트 (Software as art)라는 회사를 만들어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영웅으로 뽑을 수 있는 사람은 검색을 대중적인 서비스로 만든 알타비스타의 마이클 버로우즈와 루이스 모니어이다. 마이클 버로우즈는 알타비스타가 쇠락하자 MS로 옮겼다가 세계 최대의 검색 업체인 구글로 회사를 옮겼다. 루이스 모니어 역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ebay로 옮겼다가 본업을 찾아 구글로 옮겼다. 하지만 루이스 모니어는 대기업이 된 구글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번년도 8월 Cuil이라는 신생 검색 업체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Cuil은 구글의 핵심 개발자들이 새롭게 개발한 검색엔진이라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Cuil은 루이스 모니어가 부사장으로 취임한지 한달만에 서비스를 오픈하지만 그는 사장과의 갈등으로 인해 Cuil을 떠나고 현재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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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