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0 13:01

ZDnet 에 쓴 칼럼입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영예는 힉스 입자 존재를 예견한 피터 힉스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와 벨기에의 프랑수아 엥글레르 브뤼셀자유대학 교수 2명에게 들어갔다. 이에 힉스 입지를 발견하고 입증한 CERN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이 주목 받고 있다.

 

CERN 은 원자핵을 연구했던 곳으로 물리 관련 연구를 진행중이다. CERN은 이번 노벨상 수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주목을 받은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CERN은 우리가 흔히 ‘웹’으로 부르는 '월드 와이드 웹'(WWW)을 발명한 곳이다.

 

원자핵을 연구하던 연구소에서 왜 웹을 발명한 것일까?

 

이 에 대한 답을 말하기 전에 왜 인터넷이 개발됐는지부터 살펴보자. 웹은 유럽에서 개발됐지만 인터넷은 미국에서 개발됐다. 요즘은 인터넷과 웹을 혼동해서 많이 쓰지만 인터넷은 개방 네트워크로 TCP/IP라는 기술에 기반한 네트워크다.

 

인터 넷이 처음부터 TCP/IP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NCP(Network Control Program)라는 기술을 이용했고 1983년 TCP/IP로 변경했다. 웹이 개발 되기 전에는 정보 검색을 위해 고퍼 (gopher)를 주로 이용했다.

 

미국은 생존을 위해 인터넷을 개발했다
 

그 렇다면 왜 미국에서 인터넷이 개발되었을까? 세계 최강국이기 때문에? 시대적인 요청에 의해 개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컴퓨터는 원래 계산하는 기계라는 뜻으로 이름 그대로 계산을 위해 세상에 나왔다. 2차 세계 대전 때 암호 해독과 포탄 발사 등을 계산하면서 크게 발전했다.

 

이 때문에 연합군뿐 아니라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도 상당 수준의 컴퓨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콘트라 추제’가 개발한 Z3가 대표적이다. 독일은 패전하면서 컴퓨터의 필요성이 급감했지만, 미국은 이후에도 기술이 계속 필요했다.

 

냉전 시대의 패권국가로 소련과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 연합군의 기술뿐만 아니라 적군이었던 독일 기술을 흡수 해 크게 성장 한 회사가 IBM이다. 냉전시대 시장의 요구는 포탄과 암호 해석 등이 아니라 정보였다.

 

미 국방부는 정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보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를 많이 했다. 국방부의 지원으로 태어난 정보 네트워크가 인터넷이다. 미국은 인터넷을 10 년 동안 큰 문제 없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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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10.08.09 08:23


 대한민국 초고속 인터넷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IT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90년 대 중반까지만 해도 모뎀과 Co-Lan 등을 통해 간신히 텍스트 전송하는 수준이었던 대한민국이 몇년만에 세계 최고의 초고속 인터넷 강국으로 거듭 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정리 해 보았다.


정부 부처의 예산 낭비로 시작 되어


9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KT,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에서 3중으로 네트워크 망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통신 사업은 KT만 하고 있었고 일반인들은 모뎀과 Co-Lan을 통해 저속의 인터넷 서비스만 이용 가능했다. 3사가 네트워크 망을 독립적으로 구성한 이유는 부처간의 협조가 안 된 상태에서 앞으로 네트워크 세상이 올 것이라는 가능성만을 믿고 경쟁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광케이블 1미터 설치 가격이 약 10만원 정도 할 정도로 네트워크 가격이 매우 비쌌다. 이런 네트워크를 3중으로 구축 했으니 천문학적인 자금이 중복 투자 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다. 이렇게 비싼 고속 네트워크를 전국으로 3중 구축해 놓은 곳은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천문학적인 투자에 비해 활용도 낮아

 

문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했지만 당장 사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법적 제약이 컸다.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전력 모두 당시 통신 업무를 담당하던 체신부 산하 기관이 아니어서 통신 업무를 할 수 없었다. 방송 업무 역시 할 수 없었다. 통신, 방송 업무를 할 수 없었기에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 모두 막대한 투자를 해 놓고 마땅히 사용 할 곳을 찾지 못했다. 당시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전광판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막힌 다는 안내 메세지 내보내는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교통 상황 변경에 따라 가끔씩 몇 글자만 전송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자체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청문회 피하기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민간 기업에 임대

 

천문학적인 투자에 비해 활용도가 너무 낮자 청문회 대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 한국전력과 도로공사는 네트워크 활용도를 높여 청문회를 피해가야 했기에 민간 기업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한국전력은 당시 컴퓨터 전문회사로 유명했던 삼보컴퓨터에 통신 사업을 제안했다.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를 제공했던 두루넷이었다. 한국 도로공사 역시도 CJ에게 망을 임대해 드림라인이라는 대형 회사를 만들었다.

 이들 업체는 국가로부터 저렴하게 임대 받은 네트워크망을 통해 약 월 4만원에 이용료만 받고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할 수 있었다. 현재 가격 기준으로 보면 비싼 금액이지만 당시만해도 세계에서 가장 싼 금액이었다. 당시 비싼 네트워크 가격을 고려해 볼 때 민간 기업 스스로 인터넷망을 구축했으면 절대 제공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때마침 김대중 정부는 IMF 탈출을 위한 성장 동력이 필요했고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는 슬로건 아래 국가차원에서 초고속 인터넷과 PC를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빠른 시간 내에 초고속 인터넷 강국으로 성장 할 수 있었다.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세계 최초의 기록 만들어

 

정부로부터 네트워크를 싸게 임대 받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기업들의 혁신과 도전정신도 큰 도움이 되었다. 두루넷이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 해 국내 최초로 미국 나스닥 상장이라는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성과를 만들어냈다. 또한, 하나로통신은 이미 모든 가정에 보급 되어 있는 전화선을 이용해 초고속 인터넷을 구현하는 기술인 ADSL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 해 국내 초고속 인터넷 발전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정부 기관들의 중복 투자, 기업들의 과감한 도전 정신, IMF 탈출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 등이 초고속 인터넷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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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9.11.30 08:43

ICANN 본부

인터넷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과 도전하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슬기롭게 이용 할 경우 국제 인터넷 무대에서 한국 인터넷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

 

현재 세계는 미국 중심으로 돌아 가고 있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절대 포기 못하는 것은 무기와 달러이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해 경찰국가를 자임하며 세계를 대상으로 군수물자 판매와 정책 설계를 하고 있다.

 

미국은 달러를 세계의 통화로 만들어 물건을 구입하고 싶을 경우 달러를 찍어 외국에 준다. 엄청나게 찍어 내고 있는 달러가 미국으로 돌아와 그들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타 국가에서 달러가 계속 유통 될 수 있도록 국가간 거래에 달러를 사용 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90 년대 이후 가장 신경 쓰는 분야는 인터넷이다. 미국은 크게 도메인, IP, 네트워크의 독점 권한을 통해 전세계 인터넷을 막후 조종하고 있다. 미국에 통제하에 각 나라별로 인터넷에 접속 할 수 있는 IP를 배분하고 있으며 com, net, org 등 최상위 도메인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돈을 내야 한다. 미국과 해저 케이블을 연결 해 인터넷을 연결 하려고 해도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인터넷이 연결되면 양국끼리 데이터가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불평등하게 계약 되고 있다.

 

이런 불평등은 ICANN으로부터 기인한다. ICANN은 IP, 도메인, 네트워크 등 인터넷의 핵심적인 정책을 결정하는 국제 비영리 기구이다. 국제 협의체이지만1998년 6월 미국 정부에서 발간한 '인터넷 주소 운영에 관한 백서'에 의해 탄생했기에 정기적으로 미 정부에 보고를 한다. 실제적으로 미국 정부의 산하 단체나 다름 없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인터넷 전반에 대한 정책을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단체이기에 주도권을 절대 포기하지 않은 단체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미국 정부가 인터넷에 대한 주도권에 얼마나 집착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으로는 ‘존 포스텔’ 사건이 있었다. 존 포스텔은 초기 인터넷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과학자로 도메인 기술을 개발했다. 초기 주요 도메인과 IP 정책은 사실 그가 대부분 설계 후 관리했다. 이후 인터넷의 중요성이 커지자 미국 정부는 자신들의 비용으로 인터넷이 연구 개발 되었다는 명분으로 도메인과 IP 정책에 대한 권한을 그에게서 빼앗아 온다.

 

이에 존 포스텔은 TCP/IP를 개발 해 인터넷의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는 빈트서프 등 초기 인터넷 과학자들과 모여 1992년에 ‘인터넷 소사이어티’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초기 인터넷이 미국 정부의 예산을 통해 설립 된 것은 맞지만 이미 인터넷이 국제적인 네트워크로 미국 정부가 관리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넷 소사이어티는 도메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전세계 주요 상표권자들과 협력을 하기로 하였으며 대형 통신사인 MCI와 대형 IT 기업인 Digital 등과도 협력을 해 미국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인터넷 정책 기구를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인터넷 소사이어티의 활동과 그들의 협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항의 해 존포스텔은 자신의 컴퓨터를 전 세계 인터넷의 루트 서버로 바꾸는 도발을 감행했다. 미국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존 포스텔을 압박했고 존 포스텔은 루트 서버를 다시 미국 정부로 돌려 놓았다. 하지만 존 포스텔은 이때 미 정부로 받은 협박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시달리다 9 개월 후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존 포스텔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인터넷의 주요 정책은 자신들이 결정 할 것을 공식 선언하며 법으로 명문화했다.

 

이후 인터넷의 주요 정책은 미 정부 하에 결정 되었으며 이에 도전하는 세력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면서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세계 1위 검색 사이트는 구글이지만 2위 자리를 높고 야후와 중국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가 경쟁을 할 정도로 중국은 성장했다. 이미 인터넷 이용자수는 중국이 미국을 앞질러 버렸다.

 

이런 성장을 발판으로 중국은 끊임 없이 인터넷의 패권을 자신들과 나누길 요구했으나 미국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거절했다. 하지만, 2006 년 3월 중국은 com, net 등을 자신들의 언어로 호환 연결 시키는 도발을 감행하며 미 정부에 정면 도전을 했다.

 

미국 정부는 인터넷의 패권을 중국과 나누어 라이벌을 만드는 것보다는 일부 정책을 신흥 인터넷 강국들과 협의하는 전략으로 변경했다. 이에 대한 첫 번째 전략이 얼마 전 서울에서 있었던 ICANN 서울 회의였다. 주요 안건인 '다국어 최상위 도메인(IDN, Internationalized Domain Name)'을 ICANN이 승인 한 것이다. 국제 도메인에 적극적인 나라인 중국과 한국 중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한국을 택해 발표를 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인터넷에 주요 정책을 독점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것을 알고 있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국가에게 권한을 일부 배분 후 전 세계 공조라는 모양새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 발언권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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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
2009.11.17 08:44

우리가 새롭게 사용하는 말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 할 때가 있다. 인터넷과 웹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터넷은 원래 컴퓨터끼리의 연결을 뜻하는 단어였다. 현재와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각자 존재하던 네트워크들이 서로 연결 되기 시작하면서 단일한 거대 네트워크가 되면서부터이다.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1969년 레오너드 클라인룩 교수에 의해 구축되고 그의 제자인 빈트 서프가 1974 TCP/IP를 개발 해 기술이 표준화 되면서 그 동안 따로 존재했던 전 세계의 네트워크들이 빠르게 연결 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에는 인터넷이란 단어가 컴퓨터들끼리의 연결이란 뜻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와 동일한 뜻으로 혼재 되어 사용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거나 (Internet) 고유 명사를 뜻하는 the를 붙여 사용 (the internet)하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웹은 컴퓨터끼리 연결 후 이용 가능한 여러 기술 중 하나이다. 1969 ARPANET에 컴퓨터들이 연결 후 정보 교환을 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등장했는데 웹이 등장하기 전 23년간 고퍼, 텔렛, 아키, 이메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서버에 설치 해 정보를 교환했다.

 

웹은 팀 버너스리에 의해 제안 된 기술로 웹문서들끼리 링크를 걸 수 있는 기술이다. 팀 버너스리가 근무하던 CERN은 유럽인들의 공동 연구소로 주로 물리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각국에서 온 과학자들이 보유 한 방대한 연구 자료를 효과적으로 공유 할 방법을 찾다가 문서들끼리 링크를 걸면 좋겠다는 생각에 개발한 것이 웹이다. 1989년 제안 후 1991 Hypertext91에서 최초로 발표했고 1992년부터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당시 웹을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링크라는 것이 이미 47년 전에 Vannevar Bush에 의해 처음 제안 된 후 컴퓨터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웹은 문서 중간 중간에 링크가 걸려 있는 것이 전부였다. 키보드를 이용 해 웹서핑을 해야 했기에 매우 불편했을 뿐 아니라 글자만 표현 가능 해 시각적인 효과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웹은 링크를 인터넷에 접목 한 것에 불과하다고 저평가하였다.

 

하지만, 역사는 전혀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다. 미국에 NCSA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22살의 젊은 청년인 마크 앤드리슨이 모자익 (이후, 넷스케이프로 변경)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팀버너스리가 만든 웹은 그래픽도 없이 키보드를 이용 해 접속 해야 했지만 모자익을 PC에 설치 해 웹을 이용하자 지금처럼 글자와 그림을 마우스로 선택해 가면 이동하면 되었다.

 

이후 웹은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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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