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1 10:03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본토를 공격 당하지 않고 승전국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때문에 유럽을 넘어 독보적인 경제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73년 중동전쟁 발발 이후 페르시아 만의 6개 산유국들이 가격인상과 감산에 돌입해 배럴당 2.9달러였던 두바이유가 4달러가 넘는 ‘오일쇼크’로 전 세계가 경제 위기에 빠졌다. 오일쇼크가 터져 물가가 폭발적으로 오르자, 물가를 내리기 위해서 17%라는 초고금리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17%라는 금리를 감당할 수 없자 미국의 제조업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자 비용 17%를 내고 수익을 낼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자연스럽게 ‘made in USA’는 세계 시장에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위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통 받는 문제였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거의 붕괴 직전이었다. 영국이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은 정책에 변화를 주었다. 경제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을 노골적으로 우대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았던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가 디지털 혁명, 통신 혁명, 기술 혁명을 주장하며 앞으로의 세계는 글로벌, 자유시장, 정보화 시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은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즉, 지금의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1970년대 미국의 경제 위기에 대한 돌파구로부터 시작된 측면이 강하다. 


정보통신을 통한 경제 위기 극복 정책은 1980년대 경제 개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인기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도 매력적인 전략이었다. 뉴트 깅그리치(Newt Gingrich)를 대표로 하는 정치인들이 IT와 이를 지원하는 정책이 미국에 큰 이익을 줄 수 있다는 논리를 대중적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민 역시 공감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기회를 잡은 사람은 빌 게이츠(Bill Gates)와 스티브 잡스(Steve Jobs)였다. 세상이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대부분의 회사들이 투자를 줄이고 몸을 움츠리고 있을 때 이들은 기존 패러다임과 다른 도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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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이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