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hlman교수와 Smiley

Fahlman 교수의 Smiley 개발 25주년 기념 사진 (출처: AP)


- 이모티콘은 인터넷 역사에 남을 발명품


- 대한한국은 이모티콘을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정신은 살리지 못 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터넷을 발전 시킨 사람 중 빠지지 않는 사람이 Carnegie Mellon 대학의 Fahlman 교수이다. 그가 만든 발명품은 인터넷을 발전 시킨 10 대 발명품에 종종 선정 된다. 그는 웃는 아이콘인 :-)와 심각한 표정인 :-( 를 개발한 이모티콘 개발자였다. 그는 이모티콘이라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통해 인터넷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최초의 사이버 운동가이고, 우리는 그의 발명품을 수 십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이모티콘이라는 명칭으로 많이 불리고 있지만 90년도 중반까지만 해도 스마일리 ( smiley )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글의 끝에 감정 표현을 하기 위해 글 이외에 부호를 넣는 이모티콘의 유래는 19세기 글에서도 발견 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Scott Fahlman 교수가 1982년 9월 사용을 제안하면서부터이다.


80년대 초반 당시에는 컴퓨터 통신은 일부 컴퓨터 전문가들만 사용하던 시기였는데, Carnegie Mellon 컴퓨터 공학과에서는 다른 학교보다 앞서 학교에서 사용 할 게시판 프로그램을 개발 해 학교 내에서 시범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었다.

당시 컴퓨터 사용자들은 대부분 남자들이고 대부분의 글들은 공지 사항, 정치 문제, 컴퓨터 공학 등 매우 딱딱한 글이었다. 간혹 학교 내 주차 문제 해결에 대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글들도 올라 오곤 했는데, 문제는 이런 글들이 한번 올라 오면 바로 감정 싸움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아 여러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다.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정보를 서로 쉽게 주고 받을 수 있게 만든 프로그램이 오히려 학교 내 사람들끼리 상처를 주고 받는 애물단지로 전략해 버린 것이었다. 이때문에 Fahlman 교수는 게시판을 없애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 할 정도로 게시판 내에서의 싸움과 악플에 충격을 받았다 .

고민 끝에 Fahlman 교수님은 간단하지만 인터넷 역사에 남을 대단한 제안을 게시판에 올린다. 글을 쓸 때, 여러 사람이 함께 웃자고 쓴 글의 제목 끝에는 :-) 를 붙이고,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쓴 글은 :-( 를 붙이자는 제안이었다. 당시에는 이미지는 전송할 수 없었고 글자 하나를 전송하는 것도 쉽지 않던 시절이라 키보드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3개의 글자와 부호를 제안한 것이다.

 

정말 단순한 제안이었는데 이것이 게시판 내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불과 몇 달 뒤 :-) 와 :-(  단, 2개 로 시작했던 스마일리는 이용자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 수십 개로 늘어났다. 그러고, 거짓말처럼 게시판 내에서 서로 싸우고 남에게 상처 주는 경우가 사라졌다. 이 사건은 컴퓨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당시 최고의 IT 기업인 HP와 제록시 같은 기업들의 관계자들이 따라 사용하기 시작했다. Carnegie Mellon 대학 사람들이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 사용 시 :-) 와 :-( 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보급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사이버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려는 Fahlman 교수님의 노력이 문자 세개로 만들어진 이모티콘를 만들게 되었고 이것이 그 어떤 누구도 하지 못 한 사이버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 대단한 발명품이 된 것이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한국에서 사용하는 이모티콘에 대해 설명하는 별도의 섹션이 있을 정도로 한국은 이모티콘의 종류가 많고 빈번하게 사용하는 나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다 보니 3D 이모티콘, 개인별로 이모티콘을 지정할 수 있는 퍼스널콘 등 기술적으로도 앞서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전 세계에서 온라인 상 갈등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악플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지 오래이고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라인 실명제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모티콘의 유래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이모티콘이 가장 발달한 한국이 온라인에서 가장 많은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Fahlman 교수와 그가 만든 이모티콘처럼 온라인에서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http://www.twitter.com/doim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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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1 01:17

    한국이 이모티콘을 많이 사용하는건 알았지만 가장 많이 사용해 위키피디어에 소개될정도인지는 몰랐습니다. 생각해 보니 인터넷 포털에서 만들어 서비스하는 이모티콘도 엄청 많네요. Fahlman 교수덕에 휴대폰 문자 메시지 보낼때 조금 더 효율적으로 보낼수 있게 되었군요.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2010/09/02 09:47

      요즘 블로그에 댓글이 적어지네요. 저만 그런줄 알았더니 유명 블로거들의 댓글도 거의 없네요. 다들 트위터에서만 활동하시는 듯.. 이 글도 트위터에서만 RT되고 블로그에는 댓글이 안 달리네요. 썰렁한 댓글에 와이엇님이라도 꼬박 꼬박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2. 2010/09/03 03:13

    안녕하세요~ 인터넷 컨텐츠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업을 준비하면서 공부중인데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는 사이트라 생각이 됩니다...
    앞으로는 눈팅만 하지않고 느낀점과 의견도 함께 올리도록 노력하겟습니다.

    • 2010/09/03 09:08

      와~ 댓글 자주 써 주신다고 하니 정말 감사합니다 ~ 요즘에는 블로그에 글 쓰고 트위터에서 댓글을 확인하고 있으니. ~~ 흑 !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블로그라고 하니 기분 좋네요. 행복한 주말 보낼 수 있네요 ~


요즘 스마트폰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다시 주목 받는 서비스가 SNS이다. 이동 중 자투리 시간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서비스가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는 아니다. SNS의 역사는 오래 되었고 국내만 해도 2000년 오픈 한 대표적인 SNS인 싸이월드가 있다.

 

SNS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자이다. 사회적인 관계를 이용한 서비스? 알쏭달쏭 한 정의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네이버 카페도 사회적인 관계를 이용 한 서비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 SNS와 커뮤니티가 어떻게 다른지 아리송하기 시작한다.

 

커뮤니티와 SNS에 대한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서 잠시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 커뮤니티 서비스라는 단어를 정착 시킨 유래는 미국에서 1997년도 출판 된 'Net.gain (expanding markets through virtual communities)'라는 책이다. 이 책은 1993년도에 Howard Rheingold가 세계 최초의 사이버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는 WELL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쓴 'Virtual community'라는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모든 것은 WELL에서 시작 되었다

 

WELL은 하이테크 기술자들이 주로 활동하던 마니아성 커뮤니티로 롤플레잉, 사격 등 다양한 주제를 토의 하는 비영리 게시판 서비스였다. 이 두 책 모두 커뮤니티에 대한 개념은 매우 포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온라인에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모든 현상을 버추얼 커뮤니티라고 정의하였고, 그렇기에 USENET, RPG, MUG 심지어 Email 까지 모두 커뮤니티 서비스로 광범위하게 포함 시켰다. 


SNS는 게시판, MUD 등 다양한 커뮤니티 종류 중 특별히 개인의 관심, 취미, 사회적 위치, 학교 등 동질감이 있는 사람들간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SNS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광의의 개념이었던 커뮤니티라는 단어에서 트위터, 페이스 같은 서비스가 인기를 얻자 이들 서비스들을 칭하는 단어가 필요 했고 이를 SNS로 정의하게 된 것이다.


WELL에서 만들어진 문화는 커뮤니티의 발전방향에서 일괄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는데 게시판 서비스였던 USENET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후 미국판 PC통신 서비스인 AOL, 컴퓨서브까지도 게시판이 매우 활성화 되는 결과를 낳았다하지만,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미국 사회가 그러하듯 어느 한 서비스에 치중 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변형 발전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 후, 이런 게시판 문화는 1996년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메신저인 ICQ라는 획기적인 프로그램과 결합되는 문화로 발전된다. 게시판에 글을 남길 때, 마치 Email 주소 남기듯 ICQ 주소를 남기는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게 된다. 불특정 다수와 커뮤니케이션하다가 특별히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과 직접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문화는 영상으로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는 Skype가 발전 할 수 있는 토양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의 커뮤니티는 SNS부터 시작했다

 

미국이 주로 1:1 커뮤니케이션 하는 문화로 발전했다면 한국은 PC 통신 시절부터 온라인 서비스가 커뮤니티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원조는 88년도에 시작 된 국내 최초의 온라인 서비스인 케텔이다. 여기서 지금은 보통 명사화 되어 버린 정모, 번개라는 단어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또한, 동호회 정기 채팅은 관심이 비슷한 사람들 여러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 이야기 하는 채팅방 서비스가 매우 활성화 되는 결과를 낳았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이 ICQ AOL 메신저를 통해 1:1 커뮤니케이션으로 발달한 미국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 후, 하이텔을 통해 PC통신 동호회가 대중화 되기 시작하며 90년 대 중반에 이르자 세계 최대의 동호회라고 자칭하던 OSC 동호회가 전성기를 맞게 된다. 당시 OSC 동호회는 정기 모임 시에 수 천명이 한꺼번에 모였으며, 운영진이 쓰는 리뷰 한마디에 국내 IT기업들의 매출액이 달라질 정도였다. 예산 또한 수 천만원이 넘어 이미 온라인 동호회 수준을 벗어나게 된다. 여기서 활동하던 분들이 상당수 타 동호회 시삽으로 활동하게 되고, 이들은 추후 기존 커뮤니티 회원들을 이끌고 다음 카페로 이동을 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는 PC통신 동호회를 그대로 웹서비스로 만들어 놓은 다음 카페가 어려움 없이 상업적인 성공은 거둔다. 이후 한국은 커뮤니티 문화를 더욱 발전 시켜 개인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커뮤니티, SNS인 싸이월드를 2000년 오픈 해 발전 시켰고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인이 중심이 되는 SNS 성공을 이루었다.

미국에서도 웹에서 커뮤니티를 제공 한 서비스로는 96년에 오픈한 Classmate.com 등이 있었지만 한국처럼 오랜 기간 커뮤니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주류로 성공하지 못했고 2002년 Friendster가 인기를 얻으면서 조금씩 대중화 되었으며 본격적으로 Myspace를 넘어 요즘 유행하는 Facebook을 통해 꽃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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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9 11:01

    국내 SNS의 역사를 잘 보여주네요. 케텔, 띠리리 케륵케륵 하던 모뎀소리, 흑백글씨(일부 오렌지칼러를 지원하던 모니터에서는 오렌지 글씨)로만 채워져 있던 그 때가 생각나네요. 아 이런걸 페이크 해주는 것도 장사가 될려나...

    • 2010/08/23 09:07

      웹에서 PC통신을 구현한 서비스인 01410.net 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약 5년전에는 잘 되었는데 지금은 공사중이라는 안내만 있고 메인 페이지만 있네요. 저도 오래 전 추억 생각나서 자주 접속 했었는데 장사는 잘 안 된거 같습니다 :)


 대한민국 초고속 인터넷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IT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90년 대 중반까지만 해도 모뎀과 Co-Lan 등을 통해 간신히 텍스트 전송하는 수준이었던 대한민국이 몇년만에 세계 최고의 초고속 인터넷 강국으로 거듭 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정리 해 보았다.

 

정부 부처의 예산 낭비로 시작 되어

 

9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KT,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에서 3중으로 네트워크 망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통신 사업은 KT만 하고 있었고 일반인들은 모뎀과 Co-Lan을 통해 저속의 인터넷 서비스만 이용 가능했다. 3사가 네트워크 망을 독립적으로 구성한 이유는 부처간의 협조가 안 된 상태에서 앞으로 네트워크 세상이 올 것이라는 가능성만을 믿고 경쟁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광케이블 1미터 설치 가격이 약 10만원 정도 할 정도로 네트워크 가격이 매우 비쌌다. 이런 네트워크를 3중으로 구축 했으니 천문학적인 자금이 중복 투자 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다. 이렇게 비싼 고속 네트워크를 전국으로 3중 구축해 놓은 곳은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천문학적인 투자에 비해 활용도 낮아

 

문제는 천문한적인 비용을 투자했지만 당장 사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법적 제약이 컸다.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전력 모두 당시 통신 업무를 담당하던 체신부 산하 기관이 아니어서 통신 업무를 할 수 없었다. 방송 업무 역시 할 수 없었다. 통신, 방송 업무를 할 수 없었기에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 모두 막대한 투자를 해 놓고 마땅히 사용 할 곳을 찾지 못했다. 당시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전광판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막힌 다는 안내 메세지 내보내는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교통 상황 변경에 따라 가끔씩 몇 글자만 전송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자체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청문회 피하기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민간 기업에 임대

 

천문학적인 투자에 비해 활용도가 너무 낮자 청문회 대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 한국전력과 도로공사는 네트워크 활용도를 높여 청문회를 피해가야 했기에 민간 기업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한국전력은 당시 컴퓨터 전문회사로 유명했던 삼보컴퓨터에 통신 사업을 제안했다.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를 제공했던 두루넷이었다. 한국 도로공사 역시도 CJ에게 망을 임대해 드림라인이라는 대형 회사를 만들었다.

 이들 업체는 국가로부터 저렴하게 임대 받은 네트워크망을 통해 약 월 4만원에 이용료만 받고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할 수 있었다. 현재 가격 기준으로 보면 비싼 금액이지만 당시만해도 세계에서 가장 싼 금액이었다. 당시 비싼 네트워크 가격을 고려해 볼 때 민간 기업 스스로 인터넷망을 구축했으면 절대 제공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때마침 김대중 정부는 IMF 탈출을 위한 성장 동력이 필요했고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는 슬로건 아래 국가차원에서 초고속 인터넷과 PC를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빠른 시간 내에 초고속 인터넷 강국으로 성장 할 수 있었다.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세계 최초의 기록 만들어

 

정부로부터 네트워크를 싸게 임대 받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기업들의 혁신과 도전정신도 큰 도움이 되었다. 두루넷이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 해 국내 최초로 미국 나스닥 상장이라는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성과를 만들어냈다. 또한, 하나로통신은 이미 모든 가정에 보급 되어 있는 전화선을 이용해 초고속 인터넷을 구현하는 기술인 ADSL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 해 국내 초고속 인터넷 발전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정부 기관들의 중복 투자, 기업들의 과감한 도전 정신, IMF 탈출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 등이 초고속 인터넷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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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삭제

    난다날아의 생각

    2010/08/09 18:52 | Tracked from flysky's me2DAY

    초고속 인터넷 강국 비하인드 스토리

  2. 삭제

    시답지않소이다의 생각

    2010/08/11 13:38 | Tracked from kokids' me2DAY

    대학에 막 들어갔을 무렵 학교 전산소를 들락거리며 소일거리를 하던 때에 들은 비화(?) 중 한전은 송전선로 깔 때 도공은 고속도로 만들 때 망을 같이 깐다는 게 있었다. 한전은 댁내 전원콘센트까지 네트웍을 연결하려고 했었다고. 간만에 정리된 진실(?)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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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09 14:44

    두루넷과 드림라인의 사업 시초가 공기업의 기간망 투자에서 촉발된 것이었다니, 그동안 몰랐던 놀라운 사실이군요.

    • 2010/08/09 18:15

      한국이 초고속 인터넷 강국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비결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 가지는 사람이 없어서 정리 한번 해 보았습니다 ^^;

  2. 2010/08/09 21:59

    와 감사합니다 책을 읽어도 이런내용은 자세히 안나오던대...

    • 2010/08/12 09:18

      저도 책과 신문에서는 본적이 없습니다. ^^
      단지 제가 당시 상황을 아는 이유는 관련 업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 시설, 인터넷에 뿌욱~ 빠져 TT선 기술을 이용해 네트워크 사업을 하는 회사에 창업 멤버로 들어갔거든요.

      두루넷보다도 먼저 시작했는데 나중에 두루넷이 정부 망을 싸게 임대 받아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면서 저희 회사는 망했죠. 저희는 두루넷보다 속도가 느린 33.6K 모뎀을 이용한 전용선 서비스였고 가격도 두루넷보다 비쌌어요.

      드림라인 창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당시에 많이 들었고 나중에 드림라인 자회사에서도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

  3. 2010/08/09 22:39

    천문학적 자금.......
    중복투자를 햇으니 일어날수 잇었겟죠.....ㅎ

    • 2010/08/12 09:19

      비합리적인 결정이 우리나라를 초고속 인터넷 강국으로 발전 시킬 수 있는 연동력이 될 줄은 담당자도 몰랐을거 같아요.^^

  4. 2010/08/10 01:00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초고속 인터넷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되겠네요. ^^

    • 2010/08/13 21:33

      언제나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2달전에 아이팟터치를 분실해서 와이엇님의 좋을 글을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아이폰이 생겼습니다.

      저도 이제 와이엇님 좋은 글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좋네요

  5. 2010/08/10 10:42

    푸하하, 정부 부처 예산낭비가 이런 결과를 ㅋㅋㅋ
    세렌디피티같군요~

    • 2010/08/18 14:04

      솔직히 세린티파티가 뭔지 몰라서 검색 해 보았습니다.
      영화 이름이네요

      멜로 영화인데 뭔가 반전이 있나 보군요.
      아니면 의도하지 못 한 결과?

  6. 2010/08/19 10:32

    세렌디피티는 '우연'이란 뜻이구요, 주로 의도치 않은 발명, 발견 등에도 많이 쓰입니다 ㅎㅎ 좋은 글 잘 보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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